약 3,000년 전 한 시인이 남긴 이야기 속에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한 영웅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스스로를 돛대에 묶어 달라고 부탁한 이야기입니다.
베리디언이 끊임없이 '기준'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세이렌이라는 존재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는 바다 위 작은 섬에 사는 존재인 세이렌이 등장합니다.
세이렌들은 칼도 이빨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단 하나,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를 들은 뱃사람들은
홀린 듯 뱃머리를 섬으로 돌렸고
배는 암초에 부서졌습니다.
세이렌이 앉아 있던 풀밭 주변에는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노래의 내용이었습니다.
세이렌은 지나가는 이에게
트로이에서 있었던 모든 일과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노래했습니다.
전쟁의 영웅에게는 영광을,
지식을 갈망하는 이에게는 지식을 약속한 것입니다.
유혹은 언제나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키르케의 경고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세이렌의 바다에 닿기 전
그는 마녀 키르케에게서 경고를 듣습니다.
그 노래를 들은 자는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키르케는 두 가지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첫째,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하는 길입니다.
둘째,
그래도 노래를 듣고 싶다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게 하는 길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 두 길을 모두 택했습니다.
선원들의 귀는 막았고
자신의 귀는 열어둔 채 몸을 묶었습니다.
돛대에 묶인 사람
배가 섬에 가까워지기 전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일러두었습니다.
"내가 풀어 달라고 애원하면
그때는 더 단단히 묶어라."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오디세우스는 무너졌습니다.
그는 눈짓과 몸짓으로
밧줄을 풀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귀가 막힌 선원들은
노래도 애원도 듣지 못한 채 노를 저었고,
두 선원이 다가와 밧줄을 더 단단히 조였습니다.
배는 섬을 지나갔습니다.
노래는 멀어졌고
오디세우스의 정신은 돌아왔습니다.
그는 세이렌의 노래를 끝까지 듣고도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래의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오디세우스가 자기 자신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노래가 들리는 순간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판단을
그 순간의 자신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맑은 정신일 때 기준을 정해놓고
그 결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몸을 묶어둔 것입니다.
오늘날 행동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율리시스 계약'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낮에 세운 식단의 결심은
밤 11시 냉장고 앞에서 녹아내리고,
폭락장의 공포 앞에서 투자 원칙은 사라지며,
새벽 감정 앞에서 끊기로 한 연락이 다시 이어집니다.
결심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결심한 나와 흔들리는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준은 의지력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기준은 가장 맑은 순간의 내가
가장 흔들리게 될 순간의 나에게
미리 보내두는 약속입니다.
귀를 막지 않은 사람
귀를 막은 선원들은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위험을 피하지 않고 경험했으며,
경험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귀를 막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이야기는 피하고,
새로운 관계는 두려워하며,
불편한 정보는 외면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치지는 않지만
삶은 점점 좁아집니다.
반대로 기준 없이 모든 것을 듣는 사람은
노래에 끌려가 암초에 부딪힙니다.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깊은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경험은 열어두고 기준은 묶어두는 것,
그것이 오디세우스의 방식입니다.
또 하나의 길, 오르페우스
그리스 신화에는
세이렌을 지나간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의 음악가 오르페우스입니다.
그는 세이렌의 노래가 들려오자 리라를 들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했습니다.
선원들은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않았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밧줄이 기준이라면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목적입니다.
더 큰 노래를 가진 사람에게
작은 노래는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가 선명할수록
길 위의 유혹은 힘을 잃습니다.
베리디언이 기준을 말하는 이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세이렌이 존재합니다.
손가락 하나로 끝없이 넘겨보는 영상,
우리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 보여주는 광고,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약속까지.
모두 우리가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노래합니다.
바다에서 세이렌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돛대와 밧줄입니다.
베리디언은 여러분의 귀를 막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노래를 들어도 좋습니다.
다만 그 노래에 휩쓸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줄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베리디언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정
오디세우스가 배에 오른 것은
세이렌이 없는 바다를 찾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드시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한 것은
그 순간의 용기가 아니라,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내린 단 하나의 결정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바다 위에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노래가 들려오고,
그중 몇몇에는 이미 마음이 흔들려
배의 키를 돌려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조용한 바다가 아닙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의 기준입니다.
베리디언의 여정은 그 기준을 세우는 여정입니다.
건강을 바라보는 기준,
돈을 대하는 기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을 하나씩 다시 세우고,
그 위에서 세상의 어떤 노래에도 휩쓸리지 않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길입니다.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그랬듯,
저희는 이 바다의 지도를 건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돛대에 몸을 묶는 결정은
언제나 배에 오른 사람의 몫입니다.
세이렌의 노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온전한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나를 위해
흔들리지 않을 기준을 세울 차례입니다.
지금,
베리디언과 함께 그 위대한 여정을 시작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