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디언의 시작은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들이
과연 자신의 것이었는지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에서 출발했습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말,
성실하게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는 말,
먼저 살아본 사람들이 알려주는 기준을 따르면
적어도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까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너무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패가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전제를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노력에게 배신당한 순간
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목표만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오래 버텼고,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만큼의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래도 다음에는 다를 것이라 믿었고,
이번에는 반드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며
같은 방식으로 더 많은 노력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동안의 모든 시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0년 넘게 쌓아온 노력의 결과가
드디어 현실이 될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그동안 바라왔던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 붙잡아왔던 목표 역시
사실상 그 자리에서 끝나버렸습니다.
그 순간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실패의 결과보다도 그때 느꼈던 감정입니다.
10년이 넘도록 믿어왔던 방식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결국 보상받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공한다”
그 믿음대로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질문했습니다.
“나는 정말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시행착오의 비용
오랫동안 저는
실패를 그저 견뎌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안 되면 더 노력하고,
시간을 더 쓰면
언젠가는 답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겪다 보니
조금 다른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행착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몇 년에 걸쳐 배우는 것을
누군가는 하나의 기준을 먼저 알게 되는 것만으로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방법을 오래 반복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고,
잘못된 사람을 믿는 데에도 비용이 들며,
판단을 미루는 데에도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 비용은 돈으로만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체력,
기회와 관계,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선택의 순간까지
모두 시행착오의 일부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무조건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보다
무엇을 직접 겪어야 하고,
무엇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행착오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경험에서 배우고,
검증된 경험과 실패의 기록을 참고한다면
같은 벽에 똑같이 부딪힐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배움과 기록,
그리고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이유입니다.
삶은 모든 답을 직접 얻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시행착오를 피하려는 사람보다,
어떤 시행착오는 직접 겪고
어떤 시행착오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멀리 나아간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좋은 스승도 나의 방향이 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 저는 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사람을 대하고,
제품을 판매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하나의 세계관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지 가까이에서 배웠습니다.
많은 것을 얻었고,
지금 돌아가도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곳에 들어가기로 한 것,
그리고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한 것.
두 선택 모두 지금의 베리디언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회사의 방향과 제 자신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늦게 발견한 것은 주도권이었다
저는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제 삶에서 중요한 선택의 상당 부분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맡기고 있었습니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더 어려웠습니다.
틀린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만이 의존은 아닙니다.
존경하는 사람,
신뢰하는 사람,
실제로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에게도
자신의 판단권을 완전히 넘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들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장 큰 답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안정적으로 보이는 길을 떠났습니다.
더 좋은 제안이나 조건이
기다리고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망하더라도
제 선택으로 망하고 싶었습니다.
성공한다면 그 성공 역시
제 판단과 책임 위에 세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되찾고 싶었던 것은
주도권이었습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베리디언은 처음부터
완성된 철학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음모론이라 부르는 영역,
세상에 숨겨져 있다고 여겨지는 이야기,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강한 주장들을 많이 다뤘습니다.
우리는 균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콘텐츠보다
논쟁이 생기더라도 기억되는 콘텐츠가
더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강하게 말했습니다.
때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을
너무 빠르게 하나의 결론으로 묶기도 했습니다.
관심을 끌기 위한 표현과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의 경계가
흐려졌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행착오까지
지금의 베리디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어느 순간 저는 더 불편한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왜 기존 사회의 주장에는 의문을 품으면서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는
같은 기준으로 의심하지 않는지,
왜 주류의 과장을 비판하면서
비주류의 과장에는 더 관대한지,
왜 누군가의 권위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권위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자
베리디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조금씩 선명해졌습니다.
진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진실이라도 스스로 검증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세상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베리디언도,
그리고 자신이 가장 믿고 싶은 생각까지도
필요하다면 다시 의심하고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
그때부터 베리디언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정답을 만들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정답'이 존재합니다.
종교가 정답을 말하고,
학교가 정답을 말하며,
미디어가 정답을 말합니다.
전문가와 인플루언서,
심지어 기존 세상을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각자의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권위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신의 판단을 다시 누군가에게 맡긴다면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리디언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장까지 검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그 사실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근거가 나타난다면
기존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확인된 사실과 추론,
가능성이 있는 것과 아직 알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구조 안에 넣는다
우리는 완벽한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모든 지도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일수록 묻습니다.
이것이 틀렸다면 무엇이 관찰되어야 하는지 말이죠.
새로운 자료가 기존 설명보다 더 강하다면
설명을 바꿉니다.
과거에 우리가 말한 것과 충돌하더라도
더 정확한 쪽을 선택합니다.
틀린 것을 수정하는 것이
신뢰를 잃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브랜드의 체면 때문에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신뢰를 잃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리디언에게 진실은
한 번 정해놓고 지켜야 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계속 검증하며 가까워지는 방향입니다.
가장 좋은 고객의 정의
대부분의 교육 사업은
사람이 '계속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유리합니다.
다음 답이 필요하고,
다음 교육이 필요하며,
다시 누군가의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면
고객은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방향을 선택하려 합니다.
베리디언에서는 ‘더 오래 머무르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함께 질문하고 검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베리디언 없이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부분은 베리디언이 틀렸습니다.”
라고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결과에
가장 가까운 순간입니다.
그래서 베리디언에게 졸업은
이탈이 아니라 성공입니다.
우리는 '환경'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졸업 이후
모든 연결이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움에 대한 의존은 끝날 수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탐구하고
서로의 시행착오를 나누는 가치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배우는 사람이었던 누군가가
언젠가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질문하던 사람이
어느새 다른 사람의 질문에
깊이 있는 답변을 건네며,
한때 베리디언의 내용을 검증하던 사람이
결국 베리디언 자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영원히 스승과 학생이 나뉘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 채
서로의 시야를 확장하는 환경입니다.
그래서 이 여정을 시작한 분들은
교육 내용만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전용 플랫폼 안에서 새로운 여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직접 검증한 것을 나누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
자신이 보지 못했던 맹점을 발견하며,
또 누군가는 먼저 실패한 사람의 경험을 통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의 목적은
서로에게 또 다른 정답이 되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생각을 검증하고,
서로의 시야를 넓히며,
각자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모두가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같은 생각만 반복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질문이 만나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틀렸다면 수정하고,
배웠다면 나누고,
먼저 경험했다면
뒤에 오는 사람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공간입니다.
가장 위대한 스승에게 배운 것
우리는 지금의 길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에게 시행착오를 샀습니다.
그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전히 깊이 존중합니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이
자신이 치른 시간과 실패의 비용을 나누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성공 공식이나 사업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영원히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을 딛고
더 멀리 갈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이제 우리는 그 원칙을
베리디언 안에서 다시 이어가고 싶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가르침에 한 가지 원칙을 더하고자 합니다.
스승의 말까지 검증할 수 있는 힘.
여정은 여기서 시작된다
베리디언이 드릴 수 있는 것은
완성된 세상의 지도도,
절대로 틀리지 않는 정답도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지나오며 발견한 것,
실패를 통해 수정한 것,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검증하고 있는 지도를
펼쳐 보여드릴 뿐입니다.
그 지도를 그대로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심해도 됩니다.
반박해도 됩니다.
필요하다면 버려도 됩니다.
다만 그 과정을 거친 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이 여정은
더 이상 베리디언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됩니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경험이
여러분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이제 그다음 길은
여러분이 직접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그 위대한 여정을 시작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