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거짓이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아름다운 가치로 여깁니다.
신뢰,
충성,
사랑,
혹은 이상에 대한 헌신으로 포장된 믿음은 마치 인간의 도덕성과 깊이 연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믿음’이라는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납니다.
세상은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종교는 믿음을 미덕으로 포장했고,
교육은 믿음을 지식이라 가르쳤으며,
정치와 언론은 믿음을 신뢰라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구조의 핵심은 ‘직접 아는 것’이 아닌,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토록 많은 사회 시스템이 ‘믿음’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믿음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외부 권위로부터 독립된 확신입니다.
경험했고,
관찰했고,
의심했고,
검증했으며,
그 결과 내면 깊이 도달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믿음은 ‘모르기 때문에 선택하는 상태’입니다.
즉,
타인의 권위나 구조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 믿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교회는 신을 믿게 만들고,
학교는 조작된 역사를 믿게 만들고,
뉴스는 현실의 공정함을 믿게 만듭니다.
결국 이 모든 믿음의 구조물은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엘리트들은 이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에게는 ‘직접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지식을 조작하며,
진실을 가리는 기술에 능숙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을수록,
그 통제는 강해집니다.
종교는 이 구조의 가장 고전적인 예시입니다.
하늘 위의 신,
내려오는 계시,
맹목적 신앙,
태어나자마자 죄인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대부분은 물리적 증거 없이 그저 믿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에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직접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요?
왜 반드시 누군가의 중개를 통해야만 하는 걸까요?
정치도 믿음을 기반으로 설계된 구조입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국민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만 결과는 늘 같습니다.
구조는 바뀌지 않고,
시스템은 계속해서 우리를 착취합니다.
의료계와 언론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 ‘믿게 만들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받는 치료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짜여진 믿음 체계’입니다.
스스로가 무언가를 믿게되는 순간,
그것은 시스템이 설계한 현실이 됩니다.
믿음은 외부로 향한 시선입니다.
앎은 내면으로 향한 집중입니다.
아는 것의 본질은 모르던 사실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 아닌 내면의 잠재된 의식을 기억하는 여정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이미 여러 차례 깨어나려 했던 존재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알고자 하는 의도로 여기를 찾아왔습니다.
그 의도는 어떤 믿음보다 강하며,
어떤 권위보다 정확하며,
어떤 정보보다 깊습니다.
그 의도를 따라,
하나씩 벗겨나가다 보면 여러분은 본래 알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본질이자,
진실로 존재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